등산화 100g 무게 차이가 배낭 1kg을 더 진 것과 같은 체력 소모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 설악산 너덜길을 경등산화로 올랐던 그날, 발목이 흔들릴 때마다 온몸으로 그 차이를 느꼈습니다. 등산화는 그냥 신발이 아닙니다. 산에서 내 몸을 지키는 장비입니다.
등산화의 종류 선택 — "그냥 등산화"는 없습니다
등산화라는 단어 하나로 묶이지만, 실제로는 로우컷·미들컷·하이컷(중등산화)으로 나뉘고 각각 설계 목적이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 컷(cut)이란 신발이 발목을 얼마나 감싸는지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낮을수록 가볍고 높을수록 발목 보호력이 올라갑니다.
제가 그날 신고 간 신발은 경등산화, 즉 로우컷에 가까운 제품이었습니다. 완만한 등산로라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설악산 너덜길은 달랐습니다. 너덜길이란 크고 작은 돌이 불규칙하게 쌓인 구간을 말하는데, 발을 딛을 때마다 발목이 좌우로 흔들리는 지형입니다. 일행 중 한 명이 이런 코스에서는 중등산화가 필수라고 말해줬지만, 이미 산 중턱이었고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등산화를 '기능성화'로 인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같은 등산화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코스 난이도와 지형에 따라 반드시 다른 제품을 선택해야 합니다. 비싼 게 무조건 좋다는 의견도 있고, 아무거나 신어도 된다는 말도 있는데, 저는 '상황에 맞는 선택'이 가격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초보자에게 가장 많이 추천되는 건 미들컷입니다. 가볍고 발목 보호도 어느 정도 되어 일반 등산 코스라면 충분합니다. 겨울 산행이나 험한 암릉 구간을 자주 다닌다면 하이컷, 즉 중등산화로 올라가는 것이 맞습니다.
- 로우컷 — 발목 아래, 가볍고 통기성 우수, 둘레길·완만한 코스 적합
- 미들컷 — 발목 중간, 가벼움과 보호의 균형, 초보자·일반 등산 코스 추천
- 하이컷(중등산화) — 발목 위까지, 너덜길·암릉·겨울 산행·장거리에 필수

기능성 — 밑창·방수·무게, 이 세 가지가 전부입니다
등산화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밑창의 접지력(grip)입니다. 접지력이란 바닥면과 신발 밑창 사이의 마찰력으로, 미끄러운 암반이나 젖은 낙엽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힘을 말합니다. 비브람(Vibram) 밑창이 업계 표준처럼 쓰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밑창 돌기가 선명하고 고무 경도가 적절하게 설계되어 있어 다양한 지형에서 안정적인 그립을 제공합니다. 저도 비브람 밑창 제품으로 바꾼 이후 암릉 구간에서 체감 안정감이 달라진 걸 느꼈습니다.
방수 기능도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방수 등산화는 비 올 때만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실제로 써보니 새벽 이슬이 맺힌 풀숲, 계곡 돌다리, 늦가을 서리 구간에서도 방수 여부가 체력 소모를 결정했습니다. 고어텍스(Gore-Tex)는 방수와 투습성을 동시에 갖춘 소재로, 여기서 투습성이란 땀 등 내부 수분을 밖으로 배출하는 성능을 뜻합니다. 발이 젖으면 물집이 생기고, 물집 하나가 하산길 전체를 고통으로 만듭니다. 출처: Gore-Tex 공식 사이트
무게는 신어보기 전까지 체감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장거리 산행을 해본 분들은 알 겁니다. 등산화가 100g 무거워지면 배낭 무게가 1kg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피로가 누적된다는 건 과장이 아닙니다. 초보자일수록 가벼운 제품이 전체 산행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하나 더, 끈 종류도 의외로 중요합니다. 제가 그날 설악산에서 경등산화로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레이스 타입 끈이었습니다. 보아(BOA) 타입은 다이얼로 조이는 방식인데, 발목 부위를 세밀하게 조정하기 어렵습니다. 레이스 타입은 발볼은 느슨하게, 발목은 단단하게 나눠 묶을 수 있어서 너덜길처럼 발이 많이 흔들리는 구간에서 부상 예방에 유리합니다.

관리법 — 신고 나서가 진짜 시작입니다
등산화를 샀다고 끝이 아닙니다. 새 등산화는 반드시 길들이기(브레이크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브레이크인이란 신발 소재가 착용자의 발 모양에 맞게 적응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짧은 거리부터 신어서 발뒤꿈치와 발볼이 신발에 익숙해진 다음 본격적인 산행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걸 건너뛰고 바로 장거리 산행에 나섰다가 발뒤꿈치에 큰 물집이 잡혀 하산 내내 고생하는 분들을 현장에서 정말 많이 봤습니다.
양말도 신경 써야 합니다. 면 양말은 땀을 흡수한 뒤 잘 마르지 않아서 피부와 신발 사이 마찰이 커집니다. 울(Wool) 소재나 기능성 등산 양말을 신으면 흡습과 건조 속도가 달라서 장거리에서도 발이 한결 편합니다. 출처: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산행 후 관리는 단순합니다. 흙과 먼지를 솔로 털어내고 깨끗한 물로 헹군 뒤 그늘에서 말립니다. 직사광선에 말리면 고어텍스 코팅과 접착 부위가 빨리 손상됩니다. 세제를 많이 쓰면 방수 코팅이 벗겨질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세척 후 신문지를 안에 넣어두면 내부 습기를 빠르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밑창 교체 시기도 놓치면 안 됩니다. 비브람 밑창 기준으로 돌기가 납작하게 닳으면 접지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통상적으로 300~500km 정도가 교체 기준으로 언급되지만, 이것보다 밑창 상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닳은 밑창으로 암릉이나 젖은 낙엽길을 걷는 건 사고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처음 등산화는 얼마짜리를 사야 하나요?
A. 비싼 게 무조건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처음부터 고가 제품보다 비브람 밑창과 고어텍스 방수가 들어간 미들컷 제품을 적정 가격대에서 고르는 게 낫다고 봅니다. 장비에 익숙해지고 본인의 산행 스타일이 잡힌 다음에 업그레이드해도 충분합니다.
Q. 운동화로 낮은 산 올라가도 괜찮지 않나요?
A. 완만한 둘레길 정도라면 괜찮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 보면 운동화로 올라갔다가 발목을 삐끗하거나 미끄러운 구간에서 넘어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등산화 밑창과 일반 운동화 밑창의 접지력 설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산이라면 낮은 곳도 등산화를 권합니다.
Q. 고어텍스 등산화는 여름에 너무 덥지 않나요?
A. 고어텍스가 통기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고어텍스는 방수와 투습성을 함께 갖춘 소재입니다. 일반 방수 소재보다 훨씬 숨을 잘 쉽니다. 물론 한여름 무더위에는 비방수 메시 소재가 더 시원할 수 있지만, 변화무쌍한 산 날씨를 생각하면 고어텍스 제품이 범용성 면에서 유리합니다.
Q. 등산화 길들이기는 얼마나 걸리나요?
A. 제품마다 다르지만 보통 짧은 거리를 2~3회 걸으면서 발볼과 발뒤꿈치가 익숙해지면 됩니다. 소재가 딱딱한 하이컷 중등산화일수록 브레이크인 기간이 더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장거리 산행에 투입하면 물집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등산화 밑창은 직접 교체할 수 있나요?
A. 일부 브랜드는 밑창 재접착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비브람 밑창 교체는 등산 전문점이나 신발 수선 전문점에서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갑피(윗부분) 소재 상태가 나쁘다면 밑창만 교체하는 것보다 새 제품 구입이 비용 면에서 나을 수 있습니다.
결론
10년 전 설악산 너덜길에서 경등산화 끈을 바짝 졸라매며 한 발 한 발 내딛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날 이후 등산화를 고를 때 저는 항상 '이 신발이 내가 가려는 코스에 맞는 기능을 갖고 있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등산화는 기능성화입니다. 상황에 맞는 종류 선택이 전부입니다.
미들컷으로 시작해서 비브람 밑창과 고어텍스 방수를 확인하고, 오후에 매장에서 직접 신어보고 구매하세요. 새 등산화는 브레이크인을 거쳐 산행에 투입하고, 산행 후에는 그늘 건조와 밑창 상태 점검을 습관으로 만드세요. 이 순서대로만 해도 발이 편하고 무릎이 덜 아픈 산행을 오래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 Gore-Tex 공식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