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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등산 사고는 매년 1만 건 가까이 발생합니다. 하루 평균 30건꼴입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솔직히 좀 무감각하게 넘겼습니다. 그러다 설악산 적벽에서 직접 아찔한 상황을 겪고 나서야 이 숫자 하나하나에 사람이 달려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습니다.

등산 사고,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것
등산 사고의 절반 이상은 실족(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것)과 조난(길을 잃고 고립되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나머지는 낙석, 저체온증, 심정지 같은 응급 상황이 뒤를 잇습니다. 숫자만 보면 '조심하면 되겠지' 싶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조심'이라는 게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4년여 전, 설악산 적벽 산행을 잡았습니다. 29도의 기온에 바람도 적당하고, 날씨 예보에도 비 소식 하나 없었습니다. 산악회 멤버 셋과 함께였고, 소공원 입구에서 약 1시간 30분 어프로치(목적지까지 접근하는 구간) 끝에 적벽에 닿았습니다. 여기서 어프로치란 본격 등반 전 베이스까지 걸어 이동하는 거리를 말합니다. 준비도 나쁘지 않았고 날씨도 완벽했습니다.
문제는 적벽 중턱에서 터졌습니다. 오후 2시,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소나기겠거니 했는데 금세 퍼붓는 수준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일행 중 한 명이 저체온증(체온이 35도 아래로 떨어져 신체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상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입술이 파랗게 변하고, 손발이 떨리며,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워지는 저체온증은 빠르게 진행되면 의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지금 떠올려도 등골이 서늘합니다.
다행히 배낭 안에 서바이벌 블랭킷(얇은 알루미늄 코팅 시트로 체온 손실을 차단하는 비상용 담요)이 있었습니다. 서바이벌 블랭킷은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지만 체온 유지 효과가 탁월합니다. 급히 몸을 감싸고 수십 분을 기다렸고, 겨우 체온을 회복해 하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산에 갈 때 서바이벌 블랭킷을 빠뜨린 적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맑은 날 산에 오르면 안전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게 가장 위험한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의 기상 변화는 평지와 전혀 다릅니다. 특히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은 100m당 약 0.6도씩 낮아지고(출처: 기상청), 바람까지 더해지면 체감온도 하락은 더욱 가파릅니다. 여름철 산행이라도 여벌 옷과 방수 재킷을 챙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실족·조난: 전체 사고의 절반 이상 차지, 지정 등산로 이탈이 주요 원인
- 저체온증: 기온·바람 변화로 여름에도 발생, 서바이벌 블랭킷으로 응급 대처 가능
- 낙석: 바위산 경사면에서 돌이 떨어지는 사고, 안전시설 없는 구간 특히 위험
- 응급 질환: 심장마비 등 지병 보유자의 무리한 산행에서 빈발
응급처치와 예방, 제가 직접 챙기는 것들
그날 설악산에서 돌아온 뒤 저는 등산 배낭을 처음부터 다시 꾸렸습니다. 단순히 물과 간식만 챙기던 수준에서 응급키트(지혈대, 삼각건, 탄력붕대, 소독 패드 등 기본 처치 도구 묶음)를 추가했습니다. 응급키트란 출혈이나 골절 같은 부상 상황에서 119가 도착하기 전 손상을 최소화하는 데 쓰이는 도구 모음입니다. 무게는 300g 남짓이지만, 그 안에 꽤 많은 상황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출혈이 생겼을 때는 깨끗한 천이나 거즈로 상처 부위를 직접 눌러 지혈(혈액이 흘러나오는 것을 멈추게 하는 응급 처치)을 해야 합니다. 골절이 의심되면 절대 부위를 움직이지 말고 주변 나뭇가지나 스틱으로 고정한 뒤 즉시 119에 신고합니다. 제 경험상 이 두 가지 원칙만 숙지해도 산에서 맞닥뜨리는 부상 상황의 상당 부분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조난을 예방하는 측면에서도 제가 꼭 지키는 습관이 있습니다. 등산로 곳곳에 설치된 위치 이정표(현재 위치를 번호나 좌표로 표시한 표지판)를 눈에 익혀두는 것입니다. 위치 이정표는 구조 요청 시 구조대에게 정확한 위치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입니다. 그날 적벽에서도 이정표 번호를 미리 확인해뒀기 때문에 119 신고 상황이 됐을 때 좌표를 바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국립공원공단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산악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27명, 부상자는 2,177명에 달합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이 중 상당수가 지정 등산로를 벗어나거나, 단독 산행 중 사고를 당한 경우입니다. 가급적 2인 이상 동행하고, 출발 전 가족이나 지인에게 목적지와 귀환 예정 시간을 알려두는 것만으로도 구조 골든타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행 일정을 짜는 것도 생각보다 중요한 안전 요소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일몰 시간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후 늦게까지 산에 있었는데, 어두워진 산길에서의 실족 위험은 낮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집니다. 하루 8시간 이상의 산행은 체력 고갈과 판단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지금은 오후 3시 이전에 하산 완료를 원칙으로 잡고 있습니다.
산행 전 반드시 점검할 준비물
접지력이 확보된 등산화(밑창에 요철 패턴이 있어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신발), 여벌 옷, 서바이벌 블랭킷, 충분한 음용수, 응급키트, 그리고 보조 배터리까지.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가 직접 짊어지고 다니면서 체감한 건, 이 무게가 오히려 마음의 여유를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준비가 돼 있을수록 판단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여름에도 저체온증이 올 수 있나요?
A.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겪은 설악산 사례가 딱 그 경우였습니다. 여름철이라도 비가 갑자기 내리고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가 순식간에 떨어집니다. 고도가 높을수록 기온 변화 폭이 크기 때문에 방수 재킷과 서바이벌 블랭킷은 계절에 상관없이 챙기는 것이 맞습니다.
Q.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일 먼저 뭘 해야 하나요?
A. 일단 멈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더 헤매다가 방향을 더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위치 이정표 번호를 확인하고, 119에 그 번호를 알려주면 구조대가 훨씬 빠르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정표 번호를 미리 기억해두는 습관이 생긴 뒤로 산에서 훨씬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Q. 혼자 등산하면 정말 위험한가요?
A. 낮 시간대, 익숙한 코스라면 위험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혼자라는 사실이 얼마나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모릅니다. 그날 적벽에서 저체온증 일행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훨씬 위험했을 겁니다. 가급적 2인 이상 동행하고, 혼자 산행할 경우엔 반드시 지인에게 목적지와 귀환 시간을 알려두시길 권합니다.
Q. 등산 중 골절이 의심될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골절 부위를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스틱이나 주변 나뭇가지로 부위를 고정한 뒤 119에 현재 위치를 신고합니다. 지혈이 필요한 출혈이 함께 있다면 깨끗한 천으로 상처 부위를 눌러주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맞습니다. 응급키트를 미리 챙겨두면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Q. 노인 등산객이 특히 주의해야 할 게 뭔가요?
A. 유연성과 순발력이 낮아지면서 낙상 사고 위험이 높아집니다. 또한 지병이 있는 경우 무리한 산행이 심장마비 같은 응급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출발 전 무릎과 발목 위주의 준비운동을 충분히 하고, 산행 중 10분마다 짧게 쉬며 수분을 보충하는 습관이 체력 소모와 탈수를 동시에 막는 데 효과적입니다.

결론
설악산 그날을 돌아보면,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서바이벌 블랭킷이 있었고, 셋이 함께였고, 이정표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소해 보이는 준비 하나하나가 위기를 넘기게 해줬습니다.
등산 사고는 항상 '설마'하는 순간에 찾아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산행 준비를 귀찮음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응급키트, 서바이벌 블랭킷, 여벌 옷, 충분한 음용수, 이 네 가지는 배낭에서 뺀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일정을 짤 때 오후 3시 하산 완료를 기준으로 역산해서 출발 시간을 정합니다. 작은 원칙들이 모이면 산이 훨씬 안전한 공간이 됩니다.
다음 산행 전에 배낭 안을 한 번 다시 열어보시길 바랍니다. 없는 게 생각보다 많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