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염초봉으로 릿지등반을 가던 날이었습니다. 들뜬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웠는지, 박닥 나뭇줄기에 발이 걸려 그대로 넘어져 버렸습니다. 처음엔 "별거 아니겠지" 싶어 그냥 산행을 이어갔는데, 한 시간쯤 지나니 복숭아뼈 옆이 눈에 띄게 부어오르고 멍이 잡히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제야 이건 그냥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낮은 산이나 오르막보다 험한 구간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평탄해 보이는 접근로나 하산길에서 방심하다 다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산에서 가장 많이 다치는 부위는 어디일까요?

등산 중 발생하는 부상 중 가장 흔한 것은 발목 염좌입니다. 돌길이나 울퉁불퉁한 등산로에서 발을 잘못 디디며 발목이 접질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다음으로 하산길에서 무릎에 충격이 누적되어 생기는 무릎 통증, 그리고 넘어지거나 바위에 긁히면서 생기는 찰과상과 타박상이 뒤를 잇습니다. 탈수, 저체온증, 고산증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 부상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준비 부족이나 방심에서 비롯된 사고가 절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발목 부상, 예방과 응급처치는 어떻게 할까요?
발목 부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발목을 잡아주는 미들컷 이상의 등산화를 신는 겁니다. 발목이 약한 편이라면 발목보호대를 추가로 착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돌이 많은 구간에서는 발을 어디에 디딜지 확인하면서 걷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하산할 때 무릎이 힘들다 보니 뛰듯이 빠르게 내려오는 분들이 있는데, 이게 오히려 발목 부상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만약 발목을 삐었다면 RICE 방법을 기억해 두세요. 여기서 RICE란 Rest(즉시 멈추고 쉬기), Ice(냉찜질로 붓기 줄이기), Compression(붕대나 천으로 압박하기), Elevation(발목을 심장보다 높게 올리기)의 첫 글자를 딴 응급처치 순서입니다. 산에 얼음이 없다면 차가운 계곡물이나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넘어지고 나서 초반에 통증이 심하지 않으면 그냥 걸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그게 문제입니다. 부종과 멍이 잡히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상태가 상당히 진행된 겁니다. 응급키트에서 파스 겸 크림형 진통제를 꺼내 바르고, 압박붕대로 감아 고정한 뒤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야 천천히 하산했습니다. 평소에 대한적십자사에서 주기적으로 응급처치 교육을 받아뒀던 게 그날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무릎 통증과 탈수,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하나요?
무릎 통증은 예방이 최선입니다. 등산 스틱을 사용하고 무릎보호대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하산 시 무릎에 가해지는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출발 전 스트레칭으로 무릎 주변 근육을 충분히 풀고 시작하는 것, 하산할 때는 뛰지 않고 보폭을 줄여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기본입니다.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면 그건 이미 쉬라는 신호입니다.
탈수는 생각보다 빠르게 옵니다. 목이 마른다고 느낄 때는 이미 탈수가 시작된 상태라 볼 수 있습니다. 갈증을 느끼기 전에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조금씩 자주 마시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어지러움, 두통, 근육 경련이 나타난다면 즉시 쉬면서 물과 함께 에너지바나 포도당 캔디를 섭취해 주세요. 탈수가 심한 경우에는 전해질 음료가 일반 물보다 빠르게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저체온증과 찰과상, 기본 대응법은 무엇인가요?
저체온증은 겨울산에서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여름에도 땀에 젖은 상태에서 능선 바람을 맞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정상이나 능선에 올라서기 전에 바람막이를 꺼내 입는 습관, 이것만 잘 지켜도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심한 떨림, 판단력 저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보이면 즉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고 옷을 덧입혀야 합니다. 체온이 회복되지 않으면 바로 하산해서 병원을 가는 것이 맞습니다.
찰과상은 우선 깨끗한 물로 상처를 씻고 소독 후 밴드로 덮어주면 됩니다. 출혈이 심하다면 깨끗한 천으로 압박해 지혈하세요. 타박상에는 냉찜질이 기본이고, 붓기가 빠르게 진행되거나 통증이 심하다면 골절 가능성도 있으니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먼저입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부상으로 혼자 움직이기 어렵다면 지체 없이 119에 신고하세요. 신고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겁니다. 등산 앱에서 좌표를 확인하거나 주변 이정표의 위치 정보를 활용하면 구조대가 빠르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신고 후에는 스마트폰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불필요한 사용을 줄이세요. 보조배터리를 항상 챙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 때문입니다.
그리고 혼자 산행할 때는 반드시 출발 전에 가족이나 지인에게 목적지와 예상 하산 시간을 알려두세요. 이 한 가지 습관이 유사시 구조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줍니다.
응급키트를 "어차피 잘 쓰지도 않는데" 하고 가볍게 여기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응급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면, 자주 쓰이지 않더라도 단 한 번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정말 큽니다. 더구나 큰 사고라는 건 처음부터 크게 정해져서 오는 게 아닙니다. 사소한 부주의들이 몇 개 겹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응급용품 하나, 처치법 하나가 나 자신은 물론 함께 산행하는 동료, 때로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생명과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산행 전 최소한 이것만큼은 챙겨두세요. 밴드와 소독약, 진통제, 파스, 탄력 붕대, 무릎 또는 발목보호대, 바람막이, 충분한 물, 보조배터리, 그리고 비상 연락처입니다.
준비된 산행이 즐거운 산행이고, 결국 안전한 산행입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잘 준비해서 오르는 게 가장 좋은 등산법이라는 걸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새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