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 가리왕산을 다녀온 날의 일입니다. 출발 시점에는 맑은 날씨였습니다. 정상까지 두 시간쯤 걸어 올라갔을 무렵, 갑자기 안개가 몰려왔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안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30분도 안 돼서 5미터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날 저는 다행히 등산 지도 앱과 GPS 덕분에 안전하게 하산했지만, 같은 시간 다른 등산객이 길을 잃고 헤매다 구조대를 부른 사례를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안개는 산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무서운 위험 요소입니다.

안개가 끼기 시작하는 신호
안개는 갑자기 오는 것 같지만 사실 신호가 있습니다.
습도가 갑자기 올라가는 느낌이 들 때, 멀리 보이던 능선이 흐릿해질 때, 시원하던 공기가 차가워질 때. 이런 변화가 느껴지면 곧 안개가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봄과 가을 환절기, 특히 새벽이나 저녁 시간대에 자주 발생합니다.
안개를 봤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등산 지도 앱을 켜고 자기 위치를 GPS로 정확히 파악합니다. 안개가 더 심해지기 전에 위치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해 두는 겁니다.
시야 확보 방법
안개 속에서는 일단 시야를 확보하는 게 우선입니다. 헤드랜턴을 꺼내세요. 낮이라도 효과가 있습니다. 안개에 빛이 반사되긴 하지만 발 앞 3미터 정도는 더 잘 보입니다. 적색광 모드가 있다면 그게 더 효과적입니다. 일반 백색광은 안개에 더 많이 반사돼서 오히려 시야를 가립니다.
선글라스나 노란색 렌즈가 있는 안경도 도움이 됩니다. 노란색 렌즈는 대비를 높여줘서 안개 속에서 사물을 구분하기 쉽게 해줍니다.
길을 못 찾을 때
길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멈추는 것입니다. 무작정 움직이면 더 깊이 길을 잃습니다.
자리에 멈춰서 먼저 침착하게 호흡을 정리합니다. 그다음 휴대폰 GPS로 현재 위치를 확인합니다. 미리 다운로드 받아둔 오프라인 지도가 있다면 활용하세요. 통신이 안 되는 곳에서도 GPS는 작동합니다.

마지막 등산로 표식이 있던 위치를 기억해 내고 그쪽으로 천천히 되돌아갑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지 마세요.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호각이나 호루라기를 사용하세요

안개 속에서는 시각보다 청각에 의존해야 합니다. 호각이나 호루라기를 챙기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등산 배낭에 항상 매달아 두세요.
3번 짧게 부는 게 국제 조난 신호입니다. 30초 간격으로 3번씩 반복합니다. 일행과 떨어졌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사용합니다. 같은 신호가 멀리서 들리면 그쪽으로 천천히 이동합니다.
육성으로 부르는 것보다 호각이 훨씬 멀리, 더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안개 속에서도 효과가 큽니다.
안개 낀 산에서 가장 위험한 곳
능선과 절벽 가까운 곳이 가장 위험합니다. 시야가 안 좋은 상태에서 한 발 잘못 디디면 그대로 추락합니다. 안개 낀 날 노출된 능선 코스는 무조건 피하세요.
분기점도 위험합니다.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안개로 표지판이 안 보이면 잘못된 길로 가기 쉽습니다. 분기점에서는 GPS로 한 번 더 확인하시고 출발하세요.
준비물 체크
안개 낀 날을 대비한 필수 장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프라인 지도가 다운로드된 등산 앱, 헤드랜턴, 호각, 충전된 휴대폰, 보조배터리, 형광색 옷이나 비닐 표시. 이 중에서 형광색 옷은 일행이 잘 보이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가리왕산 그날 이후로 저는 산행 시 무조건 호각을 가지고 다닙니다. 등산 배낭 어깨끈에 작은 호각을 매달아 둡니다. 한 번도 분 적은 없지만 가지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안심이 됩니다.
안개는 예측이 어렵지만 대비는 가능합니다. 매번 출발 전에 준비물 체크하시고, 안개가 짙어지면 무리해서 진행하지 마세요. 산은 다음에 또 오면 됩니다.